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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후지산 고고메(요시다구치)는 등반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과 식당 등이 있고
루트 입구의 관리사무소와 신사가 하나 있다.
등반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고
본격적인 시작 전에 최종점검을 하는 곳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올 때처럼 서양관광객들이 많았는데
등반을 위한 나무지팡이에 욱일기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무지팡이는 등반시 스틱과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데
중간중간 산장에서 불로 지져서 직인을 찍어주기도 한다.(유료)
등반을 기념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욱일기를 달아서 판매하는 것은 내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욱일기에 대해서는... 군국주의 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러한 기계적인 구분보다는 욱일기가 역사적으로
무엇을 상징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시 고도가 있어서인지 추위가 느껴진다.
북반구에서 7월에 추위라니..
등반용으로 챙겨온 옷으로 갈아입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등반 시작 전에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았다.
휴게소에 식당은 두 곳이 있는것 같았는데 둘러보니
버스정류장 위의 식당은 메뉴도 별로 없고 썰렁하다.
밥을 먹기 전에 내일 가와구치코로 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중동계로 보이는 남자가 버스시간표 간판과 팸플릿을 비교하며 보고 있다.
- "안녕하세요. 등반 끝냈나봐요?"
물으니,
- "낮에 왔다가 조금 올라갔다가 왔어요. 이제 내려가려구요."
라고 답한다.
내가 버스시간표를 찍자 가지고 있던 팸플릿을 내밀며,
- "이것도 찍어둬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라며 자기가 가진 팸플릿을 내민다.
-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야간산행을 하고 내일 내려갑니다."
라고 건네니
- "조심해서 등반하세요. 꽤 추워요."
라며 덕담을 받았다.
그의 작은 친절에,
욱일기 때문에 언짢았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나는 채소가 들어간 우동을 먹고 황박사는 규동(쇠고기덮밥)을 먹었다.
가격도 비싼 편이고 내용도 허하지만
불평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조금 쉬다가 출발하기로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삼삼오오 등반을 위해 찾아든 사람들이
살풍경한 식당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마지막으로 배낭을 정리하는데 비상식량으로 산 빵봉지가 빵빵하다.
높은 고도와 낮은 기압이 이렇게 시각화되었다.
처음 몇 시간의 등반은 괜찮았다.
하지만 해발 3,000 미터가 넘었을 무렵부터 고산병 증세가 심해진다.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이 났다.
무엇보다 숨쉬기가 힘들다. 1분 걷고 30초 쉬는 상황이 이어지니
황박사가 중간중간에 멈추어 나를 기다린다.
화장실은 사용료가 200엔이다.
하지만 돈을 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처음에만 돈을 넣고 다음부터는 넣지 않았다.
3,200미터를 넘어서자 날씨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태풍같은 강풍이 인다.
때로 몸이 날릴 정도로 강하다.
이런 바람이 불 때면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사라진 듯 진공처럼 느껴졌다.
2~3초 정도 숨을 쉴 수가 없다.
30초 걷고 30초 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
비를 피해보지만 비와 강풍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는 예약 손님 이외에는
자기네 시설에서 비를 피할 수 없다고 다그친다.
-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여기서 비를 피하면 안돼요.
올라가든 내려가든 둘 중 하나라구요."
야속하게 들렸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비바람을 막아내지 못한 우비 사이로 이미 온 몸은 흠뻑 젖어
이는 달그락거리고 더이상 올라가기는 무리였다.
결국 황박사와 나는 하산을 결정했다.
우리와 같은 판단을 한 많은 팀들이 하산길로 모여들었다.
체력은 바닥의 바닥까지 떨어져 지하실을 팔 기세다.
내려오는 길에 동이 터오고
그 시간 즈음에 러너스하이처럼 잠시 뭔가 몽환적인 상태로 젖어들었다.
나 때문에 페이스를 잃은 황박사도
어느새 지쳤고
- "패잔병같다."
라고 자조섞은 대화를 건네며
우리는 웃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어느 일본인 등산객이
- "정상은 너무 위험해서 등반이 금지됐어요."
라며 소식을 전해준다.
호텔을 예약해 둔 가와구치코로 향하는 버스의 첫차는 8시.
우리는 5시가 조금 넘어 출발점이었던 후지산 고고메에 돌아왔다.
휴게실에 자리를 잡고 흠뻑 젖은 배낭을 풀어
테이블 위에 물건들을 말리고 나니
미친듯이 몰려드는 피곤함.
첫 버스를 타고 가와구치코역에 도착했다.
다시 멀리서 보이는 후지산은 고요하다.
하지만 정상 부근의 저 구름은 더이상 낭만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화장한 얼굴과 민낯은 다른 법이니까.
호텔 체크인은 오후 3시 부터.
예상과 다르게 너무 일찍 가와구치코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호텔로 가는 길을 인포메이션센터에 문의한 뒤
역사 내에 딸린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역시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소개해 준 동네 온천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을 때웠지만 시간은 오전 11시 남짓.
온천으로 피로는 조금 풀렸지만
5% 정도 충전된 배터리 같은 컨디션이다.
결국 12시 조금 넘어 호텔에 도착했다.
- "오늘 예약했는데 후지산 야간산행을 했더니 너무 피곤하네요.
로비에서 기다릴테니 준비되는대로 알려주시겠어요?"
너무나 피곤했던 우리는 체면이고 뭐고
고요한 호텔 로비에서 잠들어버렸다.
축 늘어진 황박사의 한 쪽 팔이 힘겨워한다.
호텔 직원의 호의로 2시 조금 넘어 체크인을 하고
낮잠에 빠져들어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저녁을 먹고 후지산을 바라보며 노천온천을 즐겼다.
배터리가 50% 이상 충전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가와구치코 주변을 산책했다.
후지산의 은혜를 입은
이 작은 온천마을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저 멀리 후지산의 산장들에 불빛이 보인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걸까.
일찍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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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완전하진 않지만 몸이 꽤나 가벼워졌다.
뷔페식 식사를 맘껏 먹고
다시 아침 온천을 즐겼다.
'이렇게 완전하게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게 꽤 오랜만이네.'
온천을 하며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원망스러웠던 후지산이 이제는 예쁜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정상까지 오르지 못했으니 다음에 다시 오라는 듯하다.
그래.
인연이 있으면 다시 오겠지.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송영버스를 타고 다시 가와구치코역으로 돌아왔다.
어제 예매한 신주쿠행 버스는 11시쯤 출발인데
10시 3분쯤 가와구치코역에 도착했다.
10시 10분 버스가 있다.
급하게 티켓판매소로 달려가 티켓 시간을 바꾸고 재발행하여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탔다.
오후의 일정에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후지큐하이랜드를 지나 도쿄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올라탄 버스는
이제 후지산을 등지고 동쪽으로 달린다.
만 하루만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던 것 같다.
후지산 정상을 오르지는 못했지만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기대감이라는 작은 가르침을 얻었다.
도쿄에 돌아와 터미널에 내리니
높은 습도와 기온 때문에
숨이 턱하고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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