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황박사의 공무일정이 있기에 먼저 호텔로 이동했다.
동선을 고려하여 이이다바시역 근처의 숙소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장마철의 높은 습도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른다.
조금 헤메긴 했지만 무사히 호텔에 도착.
가와구치코역에서 일정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방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방에서 조금 정비를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나섰다.
이이다바시역은 곳곳에 작은 식당이 많았다.
일정이 있는 구단시타 쪽으로 가는 길에 적당해 보이는 소바집으로 들어갔다.
타치구이(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먹는 방식)라서 저렴한 가격에 맛도 좋은 집이었다.
더워서 냉소바에 카레라이스 세트를 먹었는데 훌륭했다.
구단시타에서 일정을 마쳤으니
바로 옆 구단키타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에 들렀다.
내키지는 않는 곳이지만 도쿄에 첫 방문인 황박사에게는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구단시타역에서 서쪽으로 1분 정도만 언덕을 오르면
왼쪽으로 부도칸이 나오고 오른편에 거대한 야스쿠니 신사의 도리이가 보인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역사나 그 상징성 등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잘 나와있으니 굳이 여기에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생각정리 차원에서 아래의 내용은 붙여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래 점선으로 감싼 부분은 일본의 종교 및 야스쿠니,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므로 객관적인 자료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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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종교는 신도와 불교가 압도적으로 많고 기독교 등 기타 종교가 조금 있다.
특이한 점은,
각 종교 신자들의 숫자를 합하면 총인구를 훨씬 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내 기억에 신도 1억 1천만, 불교 8천만 등 총 2억명 정도 되었던 듯..
아마도 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종교를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종교관에서 비롯한 결과일 것이다.
신도는 본질적으로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이나 물건, 동물, 정령 등을 통해서 신(영혼)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 어떠한 신념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신도의 종교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신사인데 나는 신사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다.
하나는 위의 설명과 같은 전통적인 기복신앙으로서의 신도를 행하기 위한 신사.
(일본여행을 하다보면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신사, 건강을 기원하는 신사 등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의 호국(護國)신사.
(국가(공공)를 위해 희생한 군인, 군무원, 소방관, 경찰관 등을 기리는 시설로서의 신사.
웬만한 큰 도시에는 호국신사가 꼭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국신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신사가 이전부터 있었는지
메이지유신 또는 종전을 전후해서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호국신사라는 개념은 군국주의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일본의 근대 지배세력에게 매력적인 도구로서 기능했다.
자폐적인 일본 군국주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세뇌하고 강요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로 쓰였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대강 짐작이 된다.
애국을 위한 상징으로서 야스쿠니를 상정(호국신사의 본산)하고
왕이 참배하고 선전함으로서 권위를 굳건히한다.
애국(천황을 위해)의 이름으로 싸우다 죽으면 야스쿠니에서 신이 되어 만난다.
(종전 이후 야스쿠니는 국가의 관리를 받지 않는 독립종교단체화 되었음.)
제 2차세계대전에서 미국에게 쥐어터지고 무조건 항복을 했지만
당시 미국의 필요에 의해 천황을 비롯한 많은 전범들이 사면되면서
군국주의 세력들이 청산되지 못했고
이들이 형식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이식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옷으로 갈아입음으로 인해 기괴한 '전후 일본사회'가 만들어졌다.
야스쿠니 신사는 이러한 기괴한 전후 일본사회의 '정신'을 상징하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에,
시간을 초월하여 150여 년 전의 과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본인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아베를 비롯한 자민당 주류정치세력 및 극우단체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기괴한 전후 일본사회의 정신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19세기 초반 일본.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의 작은 마을에 '요시다 쇼인'이라는 한 젊은 지사가 있었다.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던 젊은 사무라이는 고향마을에서 쇼가손주쿠(松下村塾)라는 학교를 세웠다.
맹자사상에 바탕한 강력한 왕권중심 국가만이 조국을 부강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출신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교육하고 세력을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쇼가손주쿠에서 시작된 일본 군국주의는
다카스기 신사쿠, 가쓰라 고타로, 구사카 겐즈이, 이토 히로부미, 오무라 마스지로,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의 제자들로
이어지면서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막부의 권력을 왕가에게 되돌려 준 대정봉환을 이루었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집단체제 국가를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사카모토 료마의 도사번(지금의 고치현),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 등과 삿초동맹을 맺었다.)
독일과 달리 2차대전 이후에도 완전하게 숙청되지 않고 살아남은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의 외조부), 사토 에이사쿠(기시 노부스케의 동생, 어린시절 양자로 들어가 성이 바뀌었다.) 등으로
전후에도 면면히 이어지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겉옷을 입고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
아베 신조(阿部晋三)의 '晉'자는 요시다 쇼인의 수제자였던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에서 따왔다고 한다.
** 요시다 쇼인과 그 제자들에 대해서는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라는 책에서 자세하게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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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학교가 많은건지 야스쿠니 경내에는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사이즈는 중요하다.
압도적인 규모와 분위기를 자랑하는 야스쿠니를
학창시절 기억 속의 한 부분에 담아놓을 이 학생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야스쿠니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뒷편의 정원을 산책하면서
경내의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는 남겨두고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도쿄돔시티가 가까우니 들러볼까 싶다.
오늘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니혼햄 파이터스의 경기가 있다.
현재 리그 최고스타인 오타니가 니혼햄 소속이라 그런지 만원관중이다.
용품 판매점에 들러보니 니혼햄 제품이 요미우리 만큼이나 인기가 많다.
끈적끈적한 후텁지근한 날씨는 계속되고
경기를 볼 마음은 없으니
저녁 일정을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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