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그랜드호텔의 조식은 많이 실망스러웠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기본'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호텔의 조식은 그 기본이 부족하다.
음식의 맛은 차치하고 성실한 준비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굳어서 나오지 않는 테이블솔트, 속이 차가운 소시지 같은 '기본'의 문제.
클레임은 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온천을 다시 한 번 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볼 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본다.
친구가 챙겨둔 관광지도를 보다 공세리성당과 현충사를 방문하기로 즉흥 결정.
그러다 출발 직전에,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현충사는 제외시켰다.
천천히 상경하면서 공세리성당만 둘러보자.
----------------------- 공세리성당 -----------------------
공세리성당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1890년에 지어진,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성당은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다
순교한 32명의 순교자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에덴의 동쪽>, <미남이시네요>, <아내가 돌아왔다> 등의 작품이 공세리성당에서 촬영했다.
뿐만 아니라 고약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보급된 곳이다. 1895년 성당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 신부(한국명 성일론)가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약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이 기술을 이명래(요한)에게 전수하여
유명한 이명래 고약의 출발점이 되었다.
성당을 둘러보면 천주교 성당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돌 구조물이나 조각이 가끔 눈에 띄는 것이 의아했는데
1만여 평의 공세리성당 부지가 예로부터 충청도 일대에서 거둔 세곡을 저장하는 공세창고였다는 설명을 보고서
납득이 되었다. (1478년인 성종 9년 이곳에 세곡 해운창을 설치하였고, 중종 18년인 1523년 80칸의 창고를 지었으며
1762년인 영조 38년 폐창 될때까지 약 300년 간 운영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144호이고, 2005년에 한국관광공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하였으며 수령 350년 이상의 국가보호수 4종이 자리잡고 있다.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아서 종교적인 울림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남기는 아름다운 흔적임은 분명한 곳이다.
성당의 역사를 정성스레 설명해 둔 박물관, 예수의 고난을 형상화 한 길, 기본적으로 고딕 양식임에도
한국적인 요소를 적용하여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은 수목과 건물의 조화,
낮고 부드러운 언덕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은 전체적인 만듦새가 큰 몫을 하고 있음을 범부의 눈으로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수 고난의 길에 오도카니 피어 있던 상사화(Magic lily)라는 꽃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상사화는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 한국 원산의 꽃이라고 한다. 8~9월에 꽃이 핀다고 하는데 지구온난화 탓에 사전의
설명보다 조금 이르게 피었지 않았나 싶다.
지난번에 친구와 했던 여행에서는 개망초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 한 번 여행에 꽃 한 종류씩 알아가는 셈인가.
공세리성당을 마지막으로 올해 여름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국도변의 중국음식점에 즉흥적으로 들렀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간짜장에 계란후라이(프라이가 아니다!)를 올려주는 것을 보니 인천 차이나타운 계파의 손맛인가....(근거X)
찹쌀탕수육도 고기가 실하고 튀김옷이 얇았고 소스맛이 강하지 않아 수준급이다. 길가의 뜨내기손님이
많을 테지만 뜨내기를 단골손님으로 끌어들일 정도로 괜찮은 집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다시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와 함께 시작하여 비와 함께 끝맺은 수미쌍관.
이틀이 지나고 나니 다시 온천이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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